라이프앤타임, 실리카겔 (공연 '밤에피리' 후기)
늦은 밤 라이프앤타임의 빛을 듣다 불현듯 임박한 공연이 생각 나 바로 예매를 했다. 즐겨 듣던 뮤지션의 공연을 봐야겠다 결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마침 퇴근하고 시간도 딱 맞겠다, 공연 타이틀도 맘에 들고, 입장료도 부담없고 해서 결제.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요즘 한창 홍보를 하는 실리카겔이 첫 순서로 공연을 했다.
정말 어지간한 힙스터가 아니면 무성의하거나 촌스럽다고 생각할만한 그런 옷을 입고.. 보컬은 깁스한 연체동물같이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가끔 격한 무빙을 했다. 음악은 밴드 이름만큼이나 쾌적하면서 뭔가 허무한 기분을 자아냈다. 다양한 사운드가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소리를 내는데도 음악은 무거워지기 보다는 오히려 점점 평면이 되고 나중엔 무화되는 것처럼 들렸다. 생소하고 관심있는 음악이 아니라 그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거겠지만...곡들이 비슷비슷했다. 그들은 연주하는 자신들이 도취되는 음악을 만드는 것 같았다. 이건 모든 밴드가 그런 걸까?! 하지만 특히 그래보였다. 그러니까, 'ㅇㅇ을 선호하는', 'ㅇㅇ을 추구하는' 이 아닌 'ㅇㅇ에 도취되는', 혹은 '취하는'에 가까운. 그리고 무대 연출로 쓰인 LED가 음악과 잘 어울렸다. 미니멀하면서도 고운 LED 빛깔과, 살짝 괴상한 움직임(;)들이 음악과 결합하니 나도 정신이 살짜거니 아득해지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먼저 취해버린 사람을 보듯 뻘줌했다. 실리카겔의 음악은 좋아하기엔 너무 감각적이다. 나는 이런 놀자판(?)이 어색하다.
하지만 이 곡만큼은 자주 들을 것 같다.
"두개의 달이 자취를 감추고 비가 내리던 어느날, 나무들은 그것을 숨으로 이해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꿈으로 이해했다."
그리고는 라이프앤타임이 나왔는데 앍.. 진짜 너무 멋진거다. 이 사람들은 셋이서 찌를 타이밍에 정확하게 찔러 들어가 부피가 있는 큰 덩어리를 만드는 듯 하다. 한쪽이 명멸하는 감각의 음악이라면 다른 한쪽은 지긋한 관조와 성찰의 음악이랄까. 움직임 역시 대조적이었는데 그들은 정적으로 서서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렀다. 음악만이 묵직하고 탄력있고 경이로웠고, 그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그것을 만들어내면서도 동시에 음악과 연주자인 자신들을 분리하였다. 덕분에 음악은 나에게로 스며왔다. '대양을 이해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짧고 단순한 물음들은 그것을 둘러싼 멜로디와 사운드로써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었다. 대신 LED 스크린의 빛은 라이프앤타임의 음악과는 잘 안 붙었다. 이 팀에게는 조금 더 아날로그적인 오브제나 그런 영상, 혹은 아예 연주만을 위한 단순하고 담백한 무대 세팅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라앤타 공연을 처음 보는 입장에서 놀라웠던 건 (나를 포함한) 여성 관객들의 떼창....
당연히 남자 팬들도 많을 줄 알았는데... 비율 넘나 압도적인 것.
셋리스트가 비슷한 공감 공연. 자주 돌려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