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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단상

개의 목을 조르는 일

by chord_S 2017. 9. 27.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그걸 한 방에 누르는 문장이 있는데 그건

'받아들여. 어쩔 수 없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해'다.

이 말은 괴로울 때 들으면 더 괴롭고 평온할 때 들으면 더 평온해지는-마법 같은 말이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의 첫 장면은 주인공인 프랭크 언더우드가

차에 치인 개의 목을-개 주인이 발견하기 전- 순식간에 졸라 죽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장면은 나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비유로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면 내 속의 어떤 지랄맞은 생각이 떠오를 때 '그 생각의 숨통을 꽉 조르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의 (상상 속) 손에 졸리는 생각의 발작적인 꿈틀댐마저도 느껴지는 것 같다.


정치권 내의 잔인한 암투의 과정을 그리는 드라마가 그런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유는 뭘까?

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조처와 주인에게 설명을 하는-그 과정에 수반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주인공에게는 낭비다.

아무도 모르게 목을 졸라 죽이면, (아마도 그의 생각에는,) 개의 고통도 빨리 끝내는 일기도 하고 

인에게는 단지 죽었다는 말만 짧게 전하면 그만이니 그보다 '더 나은' 결정은 없었을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위태롭게 살아있는 개'보다 '이미 죽은 개'가 주인공에게 가져다 줄 번거로움이 가장 적다.

이는 지극히 이기적이면서도 고도로 정치적인 결정인데, 

앞으로도 그와 비슷한 선택들을 하게될 주인공의 냉혹한 캐릭터를 밝혀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장면은 그가 얼마나 비윤리적인 사람인지를 보여주는지보다는 얼마나 이익 중심적인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때로는 주인공이 윤리적인 선택을 한다 해도, 그가 돌연 맘이 약해졌거나 변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조차 '이익'을 위한 결정이라고 가정한다면 앞뒤가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상상으로 생각을 죽이는 일은 나 스스로를 단지 가혹하게 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선택하는 연습을 통해 욕망들에 짓눌리지 않고 컨트롤해보겠다는,

나의 (나에 대한) 단호하고도 이기적인 권력 행사를 하는 일인 거다. 

아직 번잡한 생각들이 가져다 줄 두려움들을 완전히 막아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생각에 휘둘린다는 느낌이 들 때는 몹시도 불안하기 때문에 종종 이를 악물고 무서운 선택을 해야할 때가 있다.

 

프랭크 같은 인간에게도 그런 두려움이 있었을까? 종종 표정이 너무나 사나워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더 담대해지지 않으면 살아야 할 때 죽어있고, 죽어야 할 때 사는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고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지. 사람을 강하게 하는 종류의 공통, 아니면 쓸모없는 고통. 괴롭기만 한 그런 고통이지. 

   난 쓸데없는 건 용납하지 않아." 


 "이런 상황은 누군가 행동할 사람을 필요로 하지. 불쾌하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할 사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