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적 경향의 정도는 다양하고, 더 의식적이거나 덜 의식적일 수는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 가학적 경향은 대개 사회적으로 덜 해로운 피학적 경향보다 더 무의식적이고 더 많이 합리화된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가학적 경향은 타인에 대한 지나친 친절이나 지나친 관심의 반작용 형성으로 완전히 은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합리화는 다음과 같다. "나는 무엇이 너한테 제일 좋은지 알기 때문에 너를 지배하는 거야.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내 말에 거역하지 말고 따라야 돼." 또는 "나는 너무 훌륭하고 특별하기 때문에 남들이 나한테 의존하기를 기대할 권리가 있어." 남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경향을 은폐하는 또 다른 합리화는 다음과 같다. "나는 너를 위해 지금까지 많은 것을 해주었으니까,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너한테 받을 자격이 있어." 좀 더 공격적인 가학적 충동은 두 가지 형태로 자주 합리화된다. "나는 남들 때문에 많은 피해를 당했으니까, 내가 남을 해치고 싶어 하는 것은 거기에 대한 앙갚음일 뿐이야." 또는 "나는 나나 친구들이 다칠까봐 미리 막기 위해 먼저 공격을 하는거야."
가학적인 사람과 그 대상의 관계에서 한 가지 요소는 자주 무시되기 때문에 여기서 특별히 강조할 만하다. 그것은 가학적인 사람이 그 대상에게 의존한다는 점이다. (...) 남편이 아내한테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했을 때, 남편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모두 그가 말하는 사랑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달려있다. (...) 그는 아내 없이는 살 수 없다. 아니, 어쨌든 그가 자기 수중에 들어 있는 무력한 도구라고 느낄 만한 사람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이런 경우 사랑의 감정은 관계가 끝날 조짐을 보일 때만 나타나지만, 다른 경우에는 가학적인 사람이 자기가 지배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분명히 '사랑'한다. 그것이 아내든 자식이든 가게 점원이든 웨이터든 길거리 거지든 간에, 자신의 지배를 받는 대상에 대해 그는 '사랑'의 감정뿐만 아니라 감사의 감정까지 느낀다. 그는 그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그들을 지배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물질적인 것, 칭찬, 사랑의 확인, 재치와 재기의 과시, 또는 관심을 보이는 방법으로 그들을 매수한다. 그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자유와 독립에 대한 권리만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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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학적 충동과 가학적 충동은 둘 다 개인이 견딜 수 없는 고독감과 허무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경향이 있다. (...) 피학적 충동의 여러 형태는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즉 '개체적 자아를 제거하고 자기 자신을 잃는 것',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유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자신이 너무 하찮고 무력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 목표로 가는 하나의 길이다. 고통과 고뇌에 압도당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길이고, 무언가에 열중하여 그 도취 효과에 압도당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길이다. 다른 모든 방법이 고독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마지막 희망은 자살에 대한 공상이다. (...) 피학적 해결은 상대적인 면에서조차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피학적 해결은 참을 수 없는 상태에서 생겨나 그 상태를 극복하는 데 이바지 한 뒤, 개인을 새로운 고통에 사로잡힌 상태로 내버려둔다. 인간의 행동이 항상 합리적이고 의도적이라면, 피학증은 신경증 징후가 대개 그렇듯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 신경증 징후는 공황 상태에서의 비합리적인 행동과 비슷하다. 그래서 불길에 휩싸인 사람은 창가에 서서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다. 그리고 몇 분만 지나면 계단에도 불이 옮겨 붙겠지만, 아직은 계단으로 탈출할 수 있다는 것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 이와 마찬가지로 피학적 충동은 온갖 결점과 갈등, 위험, 의심, 참을 수 없는 외로움과 함께 개인의 자아를 없애고 싶은 욕망에서 생겨나지만, 가장 두드러진 고통을 없애는 데에만 성공하거나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낳기도 한다. 피학증의 비합리성은 다른 신경증 징후가 모두 그렇듯이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채택한 수단이 궁극적으로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데 있다.
이러한 고찰은 신경증적 행동과 합리적 행동의 중요한 차이를 말해준다. 합리적 행동에서는 행동의 '결과'가 '동기'와 대응한다. 즉 사람은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 행동한다. 신경증적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충동이고, 따라서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충동은 상황을 오직 허구적으로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흐를 뿐이다. 실제로 그 결과는 그가 얻고 싶어 하는 것과 모순된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을 제거하려는 충동이 너무 강해서, 사람은 결코 허구적이 아닌 다른 의미에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행동 방침을 선택할 수 없었다. (...)
가학적 충동의 본질은 무엇일까? 여기서도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 하는 욕망은 그 본질이 아니다. (...) 다른 사람(또는 다른 생물)을 완전히 지배하는 쾌감, 이것이 바로 가학적 충동의 본질이다. (...) 타인에 대해 절대적 지배자가 되려는 이 경향은 피학적 경향의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이 두 경향은 모두 자신의 외로움과 무력감을 참지 못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하나의 기본적 욕구의 결과다. (...) 사람은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인 어느 한쪽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생관계의 능동적인 쪽과 수동적인 쪽 사이를 진자처럼 끊임없이 오가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순간에 어느 쪽이 작용하는 지를 알아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어느 경우에나 개성과 자유는 사라지고 만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제5장 도피의 메커니즘, 1. 권위주의 中
(* 강조와 파란 글씨 모두 직접 표시)
'신경증적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충동이고, 따라서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충동은 상황을 오직 허구적으로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흐를 뿐이다. 실제로 그 결과는 그가 얻고 싶어 하는 것과 모순된다.'
-> 최근의 의문에 대한 핵사이다 같은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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