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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을 위하여

by chord_S 2016. 9. 17.


8. 나는 결코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라네. 나의 현명하신 무신앙자 스승들을 대단히 존경하고는 있지만 지혜의 전능함에 대한 그들의 신념에 동의하지 않아. 자신의 모순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아테네(세상의 학문을 상징)와 예루살렘(기독교의 복음을 상징) 사이에서 고민한다고 털어놓지. 나는 사는 법과 죽는 법에 관련된 많은 문제들에 있어서는 아테네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몰아치는 폭풍우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괴로울 때 위로해 주는 말로는 아테네보다 예루살렘의 의견을 선호한다네. "한마디만 해주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는 대상은 신, 바로 번민하는 신뿐이네. 


24. 끝까지 이 위기를 견디게('위기'라는 단어는 '심판'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한 단어에서 파생되었네). 이 위기를 자네가 피해자, 피고인, 변호사, 검사의 1인 4역을 하는 소송으로 생각하고 넘겨보게. "자신이 저지른 죄의 많음과 비열함을 깨닫는 것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라고 성 장 드 크론스타트가 말했네. 두렵지만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선물을 못 본 척 지나치지 말도록 하게. 마음의 고통을 어색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역경 앞에서 우물쭈물하지도 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슬픈 마음을 달래려 다른 데로 관심을 가지려 하지 말고, 쓸데 없는 걱정으로 자신을 짓누르지도 말게. 그 대신 자신을 반성하고 양심 시험을 치른다고 생각하며 고통의 희열 속에 자신을 옥죄어 보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고통이 아니네. 만약 자네에게 이런 고통이 닥친다면 시련 앞에서 도망치지 말고, 고통의 술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남김없이 마셔보라고 말하고 싶네. 그건 이들 고난과 시련이 자네가 자신을 좀 더 알게 되고, 인격의 성숙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네. 시련과 고난은 자네를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줄 도구가 될 것이네.

 나는 선과 악이란 자신의 완성이라는 관점 안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이 선이고, 이 자유를 구속하는 모든 것이 악이야.


27. 키케로는 아티쿠스에게 보내는 그 유명한 편지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네. "마음의 고통을 덜기 위해 모든 방법을 시도해봤네. 자네가 그 증인일세. 자네 집에서 읽은 책들 가운데 마음의 슬픔을 가라 앉히는 것과 관련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네. 부질없는 일이었어. 고통이 가장 강하다네(sed omnen consolation vincit dolor)."

 그래서 그는 다른 이들의 책을 그만 덮고 직접 자신만의 고통에 대해 쓰기로 결심했네. 그 고통을 덜고, 치유하고, 툴리아에게 시키온의 대리석보다 더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기념비적 작품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네.

 자신의 괴로움들, 실패들, 양심의 가책들, 또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것은 절망을 다스리고, 수치심을 씻어 버리고 절망을 꼼짝 못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네.


60. 친애하는 대자, 플라톤의 주장은 잊어버리고 예수는 나사로의 시신 앞에서 흘린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게. 그렇다네. 예수는 나사로를 위해 눈물을 흘렸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를 부활시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네. 이 얘기가 자네에게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네. 무덤 없는 부활은 없다네.

 사랑의 고통을 되도록 빨리 떨쳐 버릴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내가 비난하는 이유는 비애를 무시하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값진 경험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며,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위기의 경험을 앗아가기 때문일세.

 ~ 현명함은 고통을 꿋꿋하게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속에서 꽃을 피우는 정원사처럼 그것을 기쁨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네.

 무기력과 유흥에 빠지지 말게. 일을 하게. 공책과 연필을 사게. 적어 내려가게. 이슬람교도의 전통에서는 착한 행동을 기록하는 천사와 나쁜 행동을 기록하는 천사가 따로 있는 것 같네. 자네 자신의 삶, 사랑, 성공, 실패에 관해 자네가 직접 써내려 갈 때, 자네는 동시에 이들 두 천사가 되는 셈이야. 평소에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자네의 삶에서 괴로운 일들이 나타날 때 그것을 일기에 쓰라고 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네. 


128. 기억만이 욕망을 가능하게 하네. 사라진 행복, 잃어버린 순수에 대해 기억하며, 천국과도 같았던 나날들을 회상하게. 지옥 같은 경험에 대한 기억까지도 말일세. 아무것도 잊지 말고 모든 것을 기록하게. 자네는 카인인 동시에 무덤 속에서 그를 지켜보는 눈이 되어야 하네. 


139. 안토니 블룸 대주교와의 만남을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열정적인 계기로 삼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는 우리에게 한 도둑의 이야기를 해주었네. 그 도둑은 시계를 하나 훔치는데, 손에 경련이 일어나 시계를 움켜쥔 손이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네. 그는 시계를 얻었지만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소유란 종종 자유의 끝을 가리킨다는 데 있네. 대여섯명의 애인에게 시달리며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고 어떻게 해야 그녀들을 떼어 버릴 수 있을지를 모르는 돈 후안보다는 사랑하는 한 여자에게 충실한 남자가 훨씬 자유롭다네.


140. 음탕한 생활을 포기하는 난봉꾼, 술을 절제하는 술꾼, 세상에서 물러나는 야심가들은 그들이 나쁜 열정에 예속되어 있던 시절보다 훨씬 자유로우며, 따라서 훨씬 행복하다네. 밧줄을 끊고 모래 주머니들을 던져 버린 뒤에야 비로소 자네가 탄 기구는 의기양양하게 하늘로 올라갈 것이네.


- 가브리엘 마츠네프, 「결별을 위하여」 中


(* 강조는 직접 표시)